오프라인 시대의 브랜드 성공은 ‘목 좋은 곳’에 달려 있었습니다. 유동인구가 많은 입지를 확보하는 것이 곧 경쟁력이었죠. 온라인 시대가 도래하자 게임의 룰이 바뀌었습니다. 검색 결과 상위 노출, 특히 높은 검색량 키워드의 첫 페이지를 차지하는 것이 새로운 황금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두 시대 모두 브랜드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소비자와의 연결이었습니다. 다만 그 연결의 방식이 진화했을 뿐입니다. 인터넷은 단순 노출을 넘어, 소비자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찾아나서는 능동적 선택의 장을 만들었습니다.
2023년 ChatGPT의 등장은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AI는 이제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복잡한 과업을 스스로 분해하고, 프로세스를 설계하며, 최종 결과물까지 전달하는 AI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전 시대에 인터넷이 현실 세계의 정보를 디지털화했다면, AI는 그 디지털 정보를 벡터로 변환해 ‘기계가 이해하는 의미 공간’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가 브랜드와 소비자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습니다.
기존 웹 환경에서 소비자는 ‘클릭’을 통해 브랜드를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다릅니다. AI 에이전트가 사용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적합한 브랜드를 선제적으로 호출합니다. 전기차, 가정용 로봇 등 다양한 디바이스를 통해 이러한 연결이 실현되며, 체험 기반 연결이 클릭을 대체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제 브랜딩은 정보 전달을 넘어 의미 기반 연결 설계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브랜드의 가시성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AI가 맥락을 파악했을 때 호출될 수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AI 에이전트는 단순 키워드를 넘어 사용자의 대화 이력, 시간, 위치, 감정, 상황, 행동 패턴을 종합적으로 분석합니다. 브랜드는 이러한 복잡한 맥락 속에서 AI가 인식하고 호출할 수 있는 의미 단위로 존재해야 합니다.
AI의 의미 네트워크는 단순한 키워드 목록이 아닙니다. 벡터 기반의 다차원 의미 공간입니다. 브랜드가 다양한 상황, 사용자 유형, 의도와 연결될수록 호출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러한 연결의 총합이 브랜드의 에이전트 접근성이자 의미 노출성이라는 새로운 경쟁력입니다.
브랜드는 더 이상 콘텐츠를 보여주는 존재가 아닙니다. AI의 워크플로우 안에서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구성요소 혹은 전체 플로우의 결과를 담보하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수면 질이 떨어지는 30대 직장인 여성”이라는 맥락에서, AI는 단순히 수면 보조제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라이프스타일, 콘텐츠, 루틴, 디바이스, 식이요법을 통합한 종합 솔루션을 제시합니다. 브랜드는 이 솔루션의 한 요소로서 그리고 전체 프로세스의 가치보증의 주체로서 의미 있게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브랜드는 자신이 해결하는 문제와 적합한 상황을 AI가 학습하고 활용 할 수 있도록 데이터화와 구조화를 통해 연결해야 합니다.
AI 시대의 브랜드는 근본적으로 이전의 시대의 브랜드들과는 다른 질문들과 마주해야 합니다.
먼저 “내 브랜드는 어떤 상황에서 호출되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운동화 브랜드라면, 단순히 ‘러닝’이라는 키워드뿐 아니라 ‘무릎 통증이 있는 초보 러너’, ‘새벽 출근 전 30분 운동’, ‘마라톤 대회 준비 3개월 전’ 같은 구체적 상황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AI는 이런 맥락을 파악해 가장 적합한 브랜드를 호출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카테고리 엔트리 포인트(CEP)의 이야기임을 알수 있을텐데, 바로 CEP가 AI 시대의 브랜딩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어떤 사용자 의도를 해결하는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사용자가 ‘피로 해소’를 원한다면, 비타민 브랜드뿐 아니라 마사지 기기, 명상 앱, 수면 용품 등이 모두 경쟁자가 됩니다. 브랜드는 자신이 해결하는 핵심 의도와 그 해결 방식의 독특함을 AI가 이해할 수 있도록 구조화해야 합니다.
또한 “어떤 AI 워크플로우에 통합될 수 있는가?”도 중요합니다. AI가 ‘건강한 아침 루틴 만들기’라는 과업을 수행한다면, 알람 앱, 요가 매트, 건강 식단, 영양제가 하나의 워크플로우로 연결됩니다. 브랜드는 이런 워크플로우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정의하고, 다른 브랜드와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설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개념들과 의미적으로 연결되어 있는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특정 장소(헬스장, 사무실, 침실), 감정(스트레스, 성취감, 편안함), 라이프스타일(미니멀리즘, 지속가능성, 프리미엄) 등과의 연결이 곧 AI가 브랜드를 인식하는 좌표가 됩니다.
이 질문들에 명확히 답할 수 없다면, AI는 브랜드를 호출할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브랜드는 이제 AI가 이해하고, 연결하고, 활용할 수 있는 구조적 언어로 자신을 표현해야 합니다.
브랜딩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습니다. 다만, AI시대에 들어가면서 소위 브랜딩을 위해 해왔던 일들에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소비자와 브랜드의 사이를 연결할 AI와의 상호 연결 구조를 주체적으로 정교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브랜드가 AI의 의미 공간 안의 주요 엔티티로 존재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AI의 워크플로우 속에서 호출 가능한 노드로 존재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스토리와 비주얼을 가지고 있어도 이 AI의 시대에는 소비자에게 도달할 수 없게 됩니다.
브랜드는 이제 소비자에게 ‘보여지는’ 대상이 아니라 AI에게 ‘호출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브랜딩은 감성과 스토리를 전달하는 예술행위와 같은 존재에서, 의미와 기능을 구조화하는 설계행위와 같은 존재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AI시대가 브랜딩을 담당하는 당신에게 던지는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입니다. 준비된 브랜드에게는 전례 없는 연결의 가능성이, 그렇지 못한 브랜드에게는 존재 자체를 위협받는 위기가 될 것입니다.